로고

다애교회 All Love Church
로그인 회원가입
  • 칼럼
  • 칼럼

    칼럼


    사백 쉰 아홉번째 이야기) 지적과 대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손우성 목사 댓글 0건 조회Hit 489회 작성일Date 18-06-19 16:31

    본문

    지적과 대안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사람은 지적하는 것만으로 잘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잘못을 지적당하는 사람은 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적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잘못한 사람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까지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기능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롬3:20)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적하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지적을 해서 상황이 좀 나아지거나 사람이 좀 달라지면 다행인데, 그보다는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일이 되려면,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내가 대안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문제를 다룰만한 적절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직접적인 지적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진정 상대방을 위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베드로에게 했던 질문은 ‘우리가 어찌할꼬?’(What shall we do?), 즉 ‘대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해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베드로는 구원과 삶을 위한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받으라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이타적인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보다는, 대안을 제시하여 상대방을 세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에 더 큰 에너지와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축구를 할 때 공을 제대로 못 찬 선수에게 “왜 공을 그 따위로 차느냐”고 소리지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실력있는 사람은 제대로 공을 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