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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백 마흔 일곱번째 이야기) 우리가족 구속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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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강병철 집사 댓글 0건 조회Hit 1,689회 작성일Date 16-02-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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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뒤 아이들과 나눔을 목적으로 우리가족 구속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온 것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의 외가는 시집 간 딸의 전도로 외증조할머님께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경우다. 또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외할아버님의 사촌들 중 목사님이 몇 분 계시기도 했고, 한국전쟁 동안 외조부모님이 공산당을 피해 숨겨 주신 목사님들도 몇 명이나 된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외조부모님께 나름의 사명을 주셨던 것 같다. 반면 나의 친가는 뿌리 깊은 무속신앙의 집안이었다. 할머님의 별칭이 무려 ‘절터 댁’이셨다. 그러나 아픈 아들을 위해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기도하시던 할머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신 뒤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처가가 하나님을 믿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 아닌 이민아 집사다. 동네에서 나름 좋다던 광림교회 유치원에 이민아 집사를 보내기 위해서 장모님께서 발을 들여놓으신 것이 믿음의 시작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민아 집사는 집안을 구원으로 이끈 큰 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부쩍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큰 아들 성묵이는 ‘내가 진주 강씨 몇 대야?’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지사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대부분은 (‘진주 강씨 어사공파 몇 대손’이라는 식의)육체적인 뿌리일 것이고, 조금 더 깊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문화적인 뿌리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반면 신앙의 족보는 어떠한가? 현 상황에서 족보라 하기엔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감안하면) 짧기도 하고 또 지극히 개인적인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에 관심 밖에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족보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을까? 세월이 흘려 그렇게 내용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족보가 되지 않을까? 족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로의 전달이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대물림이 안 되는 족보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사명 중 하나는 신앙의 족보에 작은 한 줄을 남겨서 후세와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이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누리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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