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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 일흔 아홉번째 이야기) 다애교회에서의 6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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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한정일 전도사 댓글 0건 조회Hit 1,394회 작성일Date 14-09-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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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애교회에서의 6년을 돌아보며...

    저희 가정이 다애교회를 처음 나왔던 때가 2008년 9월, 창립예배 일 주일 전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질병이라는 불청객으로 인해 저는 몇 개월 동안 일을 제대로 못하고 집에서 요양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40대에 접어들어서도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저의 모습과 어려운 현실에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었 때였습니다. 바로 그 즈음에 아내가 어디선가 ‘어 성경이 읽어지네’라고 적힌 책을 한 권 들고 왔습니다. 저는 뭔가에 빠진 듯이 그 책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애교회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등록하면서 저는 이 곳으로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부천에서 논현동에 위치한 교회를 다니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거리의 문제도 문제이지만 육체적, 경제적으로 힘든 제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도 그 원인이 되었습니다. 대형교회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을 때에는 드러나지 않던 저의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어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저의 교만과 불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저를 보내신 곳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애교회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해서 유치부 부모교사부터 시작됐습니다. 첫 해에 유치부를 섬기시던 이애실 사모님의 몸을 던지는 열정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극히 딱딱한 제가 유치부 교사를 하고 있다니... 이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부모교사님들과 함께 유치부를 섬겼습니다. 매 주마다 아이들 예배를 위한 교구를 만들고 다애방 청소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던 중에 목사님의 기습적인(?) 권면으로 장년들을 위한 QT성경방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모임 첫 날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두근거리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임이 3년이상을 지속하게 되었고, 그 모임은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된 직접적 동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적지 않은 나이에 신대원을 다니며 유치부 전도사를 하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다애교회에서 지냈던 6년의 생활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현실적 문제들도 점점 나아졌고, 영적으로도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좋은 교우분들과 사귐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영혼도 쉽을 얻었습니다. 다애교회가 창립 후 지금까지 많은 열매들을 맺어 왔지만, 그 중에 한 열매가 바로 저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매 순간을 은혜에 빚진자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다애교회의 6번째 생일이 되는 창립예배 주일입니다. 앞으로도 다애교회가 10년, 60년, 100년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키우는 터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모교사, 에즈마이야, 다애다문화학교, 생터, 여기에 금년부타 시작된 숨바섬 선교사역까지, 감당하고 있는 모든 사역들을 통해 주님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통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쳐있는 영혼들이 들며나며 생명의 꼴을 먹고 다시 회복되는 진정한 영혼의 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애교회의 창립 6주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한정일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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