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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 일흔 다섯번째 이야기) 의미 있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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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창원 댓글 0건 조회Hit 1,556회 작성일Date 14-09-05 10:07

    본문

    의미 있는 만남

     개구리와 사람과의 단순한 만남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개구리와 사람이 만나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무엇을 하더라도 개구리와 사람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형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관계가 없는 만남은 의미 없는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속에서 개구리와 사람 사이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인데, 둘 사이의 간격은 말할 것도 없이 ‘무한한 간격’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유한한 사람이 한 없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결코 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남편과 아내와 같은 친밀한 관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친밀함에 익숙해져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당연함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한 없이 낮추심으로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7장 “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따라서 이성적 피조물은 그들의 창조자에게 순종할 의무가 있는 한편, 이러한 순종을 근거로 그들은 결코 그분으로부터 축복과 보상을 얻어낼 수 없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 편의 자발적인 비하(voluntary condescension)로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것을 언약이라는 방식을 통해 나타내시길 기뻐하셨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자연은 물론 사람도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순종하였다고 해서 하나님 편에서 축복과 보상을 줄 필요나 의무도 없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사람의 순종에 축복과 보상을 하시겠다고 약속(언약)을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언약에 근거하여 사람의 순종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비하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언약을 맺는 순간, 하나님은 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스스로 자기 경계를 두셨고(본래 경계가 없으신 무한하신 분), 일정한 틀 안에서 행동하시기 때문에(본래 어떠한 틀에도 갇혀 계실 수 없으신 분),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예상할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발적인 비하/겸손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무한과 유한의)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최창원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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