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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백 쉰 다섯번째 이야기) 칼빈은 살인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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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오정세 댓글 0건 조회Hit 1,666회 작성일Date 12-05-15 19:54

    본문

    칼빈은 살인자인가?

     

    미카엘 세르베투스(1511~1553)는 인체의 혈액순환을 최초로 주장한 인물로 의학적으로 매우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1553년 10월 제네바 시의회에 의해 화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반 역사가들은 당시 제네바의 지도자였던 칼빈이 세르베투스의 화형을 주도한 것이며 따라서 칼빈은 살인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세르베투스는 스페인에서 궁정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 법학과 신학 수업을 받고 해부학을 공부하여 피의 순환을 추측하게 됩니다. 그는 의사일 뿐 아니라 박학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르베투스는 성경의 권위는 인정했으나 삼위일체 교리를 비롯한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거부했습니다. 1531년에는 빌레뉴브라는 가명으로 “삼위일체 오류론”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는 영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한 말씀과 인간이 결합된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케르베투스 (3개의 머리를 가지고 뱀처럼 생긴 짐승으로 지옥을 지킨다고 전해짐)에 비유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단적 사상으로 그는 스페인에서 사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이후 스페인에서 도망하여 파리로 건너간 세르베투스는 의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많은 의학이론들을 제시하였으나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도전 역시 계속했습니다. 이에 칼빈은 그에게 “기독교강요(칼빈이 기록한 책으로 개신교 신앙의 정수)”를 주어 바른 신앙으로 이끌고자 했으나 오히려 그는 기독교강요 여백에 칼빈을 경멸하는 낙서를 가득 써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결국 비엔느에서도 이단으로 단죄된 세르베투스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오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칼빈은 그에게 제네바로 오지 말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음에도 그는 제네바로 향합니다.

     

    악명 높은 세르베투스가 제네바에 오자 제네바 시의회는 그를 잡아 화형에 처하도록 합니다. 칼빈은 화형이 아닌 좀 더 인간적인 참수형을 하도록 요청하나 묵살되고 맙니다. 당시 의회는 칼빈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르베투스는 1553년 10월 27일 세인트 피에르 교회당에 올라가는 언덕에서 화형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처형했다는 일반 인문주의 역사가들의 주장은 합당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당시 칼빈과 제네바 시의회는 협력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칼빈은 신학적 순수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시의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견제했습니다. 또한 세르베투스는 이단 사상으로 이미 스페인과 비엔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바 있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사형 집행은 불가피하던 인물입니다.

     

    역사는 늘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종교를 이성과 분리시켜 신앙의 가장 깊은 곳에 보관하려는 인문적 사고 속에서 역사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철저하게 탈종교화를 추구합니다.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죽인 사람이라는 해석이 바로 대표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과도하게 날선 외침 속에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은 없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 오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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